2025년 05월 07일

TSUTAYA | 츠타야

1983년, 일본 오사카에 한 가게가 생겼어요.
겉보기엔 그냥 동네 가게 같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좀 달랐죠.

책이 있고, 음악 앨범도 있고, 영화도 빌릴 수 있었거든요.
지금이라면 별로 놀랄 일 아닐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들 눈엔 꽤 이상해 보였대요.

“책은 서점에서, 음악은 레코드 가게에서, 영화는 비디오 가게에서 고르는 거 아니야?”
“왜 이걸 한 공간에 다 모아놨어?”

그게 바로 츠타야의 시작이었어요.

책, 음악, 영화.
그걸 별도로 보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들을 하나로 묶은 거죠.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공간 경험을 만든 거예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점’의 모습,
사실 그 경계가 꽤 많이 무너져있죠.

책을 사러 갔다가 커피 한잔 마시고,
영화 원작 소설을 고르다가 굿즈까지 구경하게 되는,
그런 복합적인 경험.

그걸 제일 먼저 실험하고,
제일 먼저 구조화한 곳이 바로 츠타야였어요.

지금은 일본 전역에 800개 이상의 매장이 있고,
대만,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도 진출해 있어요.
그런데 단순히 매장이 많아서 유명한 게 아니에요.

츠타야는,
‘서점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하나의 모델이 됐거든요.

그래서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들도
츠타야를 많이 참고해요.

츠타야가 선보인 공간 구성 방식, 큐레이션 전략, 브랜드 경험을
자기 매장에 맞게 흡수하려고 하죠.

츠타야는 더 이상 하나의 서점 브랜드가 아니라,
‘서점이 나아갈 수 있는 다음 단계’를 먼저 보여준 브랜드가 됐어요.

근데, 더 흥미로운 건 그거예요.
이 브랜드가 처음부터 뭔가 대단한 기획으로 시작된 건 아니었다는 거.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은 실험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지금의 츠타야가 된거죠.

그래서 더 궁금해지죠.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왜 츠타야는, 그 수많은 서점들 사이에서
유독 이런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1


1983년, 일본 오사카의 작은 도시 히라카타.
당시 20대였던 마스다 무네아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가 한자리에 모인 가게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가 생각한 건 이거였죠.

“사람들은 책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해.
근데 왜 그걸 다 따로따로 찾아다녀야 하지?”

그래서 만든 게 ‘츠타야 서점(蔦屋書店)’이에요.
이름은 서점이지만, 책만 있는 건 아니었죠.

책을 팔기도 하고, 음악을 빌려주기도 하고,
영화를 고르다 보면 옆에 영화와 관련된 책이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문화 콘텐츠 큐레이션 편집숍 같은 느낌이었죠.
그땐 그런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더 새로웠고,
한 공간에서 이런 조합이 가능하다는 게 무척 어색했어요.

하지만 마스다는, 츠타야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건 되겠다.’

사람들은 이 구조를 좋아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더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었거든요.
책을 사러 왔다가 영화에 관심을 갖고,
음악을 빌리러 왔다가 관련된 책을 손에 들고 나가는 식이었죠.

이 흐름은 츠타야 브랜드의 핵심이 되었고,
그 흐름을 더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구조를 하나씩 더해가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책이나 음반을 파는 걸 넘어서,
‘경험’을 만들어주는 공간으로 츠타야를 설계하기 시작한거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츠타야는 점점 더 체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먼저 한 건, 데이터화였어요.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를 빌려가는지,
어떤 흐름으로 책과 음악을 소비하는지를 분석했어요.
그리고 그 데이터는 ‘T 카드’라는 멤버쉽 시스템으로 연결됩니다.

이 T 카드는 단순히 포인트 적립용이 아니라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고
그에 맞춘 콘텐츠를 제안할 수 있게 해줬어요.

츠타야는 점점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사람들의 취향과 일상을 관리하는 플랫폼처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03년.
츠타야는 또 한 번,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해요.

롯폰기 힐스에 새로운 형태의 츠타야 매장을 엽니다.
처음으로 ‘서점+카페’ 구성을 도입했고,
이때 스타벅스가 입점하면서 사람들이 서점에서 ‘머무는 경험’이 시작됐죠.

그전까지만 해도 서점은 책을 고르고 나오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이 공간은 달랐죠.

책을 고르다 앉아서 읽고,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음악을 들으며 쉬어가는 공간.
다른 브랜드들보다 한 발 빠르게,
‘서점은 머무는 곳’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은 계기였어요.

그리고 2011년,
츠타야는 이 흐름을 더 극대화한 공간을 선보입니다.

바로 ‘다이칸야마 T-SITE’.
츠타야라는 브랜드가 공간 디자인과 브랜드 전략을 통해
서점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버린 순간이었죠.

이 공간은 단순히 잘 꾸며진 서점이 아니었어요.

‘책을 고르는 일’ 자체가
디자인된 동선과 분위기, 큐레이션 안에서 이루어지게 계획됐죠.

음악, 영화, 책, 여행, 요리, 사진.
전문 큐레이터가 구성한 각 분야의 콘텐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처럼 느껴졌고,
고객은 그 안을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건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취향을 설계하는 구조였어요.

츠타야는 이때부터 명확한 목표를 갖고 움직이기 시작해요.

“책을 파는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책, 음악, 영화라는 상품은
그 제안 안에 녹아든 요소일 뿐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 목표를 중심에 두고,
츠타야는 더 정교한 공간, 더 정교한 브랜드 구조를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2

츠타야는 서점의 틀을 확장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어요.

‘책과 음악, 영화’라는 콘텐츠를 넘어
사람들의 일상 전체를 다룰 수는 없을까?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츠타야가전(蔦屋家電)으로 이어집니다

2015년, 도쿄 후타코타마가와.
츠타야는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열어요.
전자제품을 파는 매장이지만, 가전매장처럼 보이지는 않죠.

세탁기, 냉장고, 커피머신, 가습기, 스피커.
그 옆에는 요리책이나 사진집, 향초, LP와 같은 일상 제품들이 놓여 있어요.
제품은 기능으로 진열되는 게 아니라,
‘어떤 삶을 상상하게 하는가’를 중심으로 큐레이션돼어 있었죠.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에요.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 옆엔, 재즈 음반과 음악 잡지가 놓여 있고,
에스프레소 머신 옆엔, 핸드 드립 가이드북과 원두 관련 책이 함께 있어요.

전자제품을 고르는 경험이,
마치 라이프스타일을 상상하게 만드는 전시 공간처럼 구성되어 있는거죠.

게다가 이 공간은
제품을 사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구경하러 오는 사람’을 위한 구조로 만들어졌어요.

“지금 당장은 필요 없지만, 언젠가 이런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매장.
그래서 츠타야가전은 단순한 가전 매장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체험형 플랫폼으로 불렸습니다.

이곳의 가전들은 대부분 최신형 고가 브랜드이기도 했지만,
단지 스펙이나 가격이 아닌,
‘어떤 취향의 사람에게 어울리는가’로 설명됐죠.

그리고 이 콘셉트는 이후 일본 내 다른 유통 브랜드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가전을 파는 방식,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까지도 달라지게 만든 거예요.

츠타야는 이걸 통해
하드웨어 중심의 산업 영역에
콘텐츠와 공간, 큐레이션이라는 언어를 밀어넣은 셈이었죠.

요약하자면, 츠타야가전은
‘책을 파는 서점’에서 시작해
‘경험을 파는 브랜드’로 진화한 츠타야가,
일상의 거의 모든 분야로 콘텐츠 구조를 확장한 대표 사례였어요.

그건 단지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삶의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걸 가능하게 했던 건 결국,
츠타야가 처음부터 ‘무엇을 파느냐’보다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느끼게 하느냐’를 고민해왔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츠타야가 만든 공간은 언제나 디자인과 연결돼 있어요.
건축과 인테리어, 조명과 동선, 진열 방식과 사운드.
이 모든 요소가 브랜드 경험을 만드는 디자인의 일부였던 거죠.

대표적인 예가 아까 얘기했던, 다이칸야마 T-SITE입니다.
이 공간은 일본 건축 스튜디오 Klein Dytham Architecture가 설계했는데,
외관부터 내부 구조까지 전부 브랜드 경험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어요.

T자 패턴의 외벽,
건물 세 동을 잇는 중앙 동선,
각 섹션마다 분위기가 다른 조명과 천장의 높이.
책장이 아니라, 공간 전체가 브랜드 철학을 시각화한 설계였죠.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선 사람들은
단지 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이런 삶의 방식이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츠타야가 말하는 디자인의 구조예요.
상품이 아니라 구조를 디자인하고,
소비가 아니라 취향을 설계하는 방식.

츠타야는 그렇게
서점도 바꾸고, 공간도 바꾸고,
심지어 가전제품을 파는 방식까지 바꿔버립니다.


3

츠타야는 책을 팔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어떤 서점보다도
‘책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바꾼 브랜드가 됐어요.

그 흐름은 츠타야 브랜드 안에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츠타야가 만든 이 구조는,
‘서점이 바뀌고 있다’는 인식의 출발점이 되었죠.

대표적인 예가 일본 내 공공 도서관들입니다.
츠타야는 민관 협업 모델을 통해
‘츠타야 스타일 도서관’을 만들어냈어요.
대표적으로는 ‘다케오시립도서관’같은 곳이 있죠.

이 도서관들은 기존의 공공시설이 가진 딱딱한 분위기 대신,
책과 카페, 디자인 상품, 큐레이션 전시 등이 어우러진
체류형 복합 공간으로 재구성됐어요.

책을 읽고 나가는 장소가 아니라,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

도서관에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체류 시간도 몇 배로 증가했어요.
지역 주민의 문화 소비 방식 자체가 달라진 거예요.

책이라는 콘텐츠가 공간과 구조만 달라져도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죠.

이 영향은 민간 서점 브랜드들에게도 퍼졌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같은 국내 대형 서점들.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에서 머무는 공간, 경험을 만드는 공간으로 바뀌었죠.

특히 교보문고는
오픈형 진열 방식,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
라이프스타일 소품 섹션 등을 도입하면서
츠타야의 방식을 참고한 리뉴얼을 시도해왔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독립서점이나 편집숍들이
‘츠타야처럼 큐레이션하는 방식’을 자신들의 콘셉트에 참고하고 있어요.

츠타야는 하나의 브랜드를 넘어서,
‘서점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한 대표적인 브랜드가 된거죠.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사실 한 회사가 있어요.
바로 컬처컨비니언스클럽(Culture Convenience Club, CCC)입니다.

CCC는 츠타야 브랜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모회사로,
단순히 서점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책과 콘텐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까지 함께 설계하는
복합 콘텐츠 기업이에요.

T-SITE, 츠타야가전, 츠타야 서점은
CCC에서 만들어진 브랜드 전략의 결과물인거죠.

그러니까 츠타야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브랜드지만,
동시에 CCC라는 회사가 실험해온
‘콘텐츠 플랫폼의 형태’이기도 한 거예요.

이 브랜드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공간을 멋지게 꾸미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사람이 어떤 구조 안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걸 철저하게 설계한 결과물이 츠타야예요.

그래서 츠타야는 ‘디자인된 공간’이 아니라, ‘반응을 설계한 구조’라고 말할 수 있어요.

책이 있던 자리에 음악이 들어오고,
가전이 놓이고, 카페가 함께하고,
콘시어지가 사람을 안내해주는 구조.

그 안에서 우리는
책 한 권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건 단순히 책을 파는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책을 다루는 태도’ 자체의 변화예요.

그리고 그 변화는
서점이라는 공간을 넘어,
브랜드가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 전체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지금도 일본 각지에는
츠타야의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새로운 매장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 디자인과 운영 방식을 배우려는 해외 브랜드들도 늘고 있어요.

츠타야는 결국,
서점이라는 구조 안에서 시작했지만,
‘콘텐츠와 공간이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실험해온 브랜드였습니다.

그 실험의 결과가 지금,
서점의 기준이 된 거예요.


4

처음엔 그냥 책, 음악, 영화를 함께 놓은 가게였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 안에서
‘머물고 싶다’고 느낀 순간부터,
츠타야는 단순한 서점이 아니게 됐죠.

그 작은 감각 하나가,
지금 우리가 서점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한 거예요.

지금 브랜드 준비에 고민이 많다면
츠타야의 작은 시작처럼
조금은 단순하게 생각해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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