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구 제조업체가
디자인과 문화의
아이콘이 되다.
그냥 언뜻 보기엔 공장처럼 보였어요.
벽돌 건물도 있고, 창고도 있고,
멀리 굴뚝도 보이고요.
Source | vitra.com | Vitra campus
근데 몇 걸음만 더 가면,
유리로 된 박물관이 나오고,
유명한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소방서도 있어요.
Source | vitra.com | Fire station
그리고 길 건너엔 의자가 전시된 하얀 건물.
그 옆에서는 실제로 의자를 생산하고 있고요.
공장 같기도 하고, 박물관 같기도 하고,
전시장 같기도 한 공간.
전 세계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한 공간.
Source | design-museum.de | Vitra schaudepot
여긴 뭐 하는 곳일까요?
이 이상한 공간의 시작은
아주 단순했어요.
1950년대, 스위스 바젤 근처의 작은 목공소.
매장에서 쓰는 유리 진열장을 만드는
지극히 평범한 제조업체였죠.
유리 진열장은 독일어로
비트린(vitrine)이라고 해요.
그걸 만들던 회사라서,
이름도 그렇게 붙였대요.
비트라(Vitra).
오늘의 이야기, 가구 브랜드 비트라입니다.
1
비트라는 처음부터 디자인 철학을 내세운
브랜드는 아니었어요.
작은 공방에서 실용적인 가구를 만들던,
비교적 평범한 제조업체에 가까웠죠.
하지만 몇 년 뒤인 1957년,
비트라의 모든 것이 달라지는 사건이 생겨요.
창업주 빌리 펠바움이
미국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낯설고 이상한 의자를 하나 봐요.
Source | vitra.com | Willi Fehlbaum 빌리 펠바움
딱딱하지도 않고,
못도, 나사도 안 보이는데
형태가 너무 매끄러웠대요.
그 의자는 미국의 디자이너,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가
만든 것이었죠.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임스 체어’ 시리즈죠.
Source | vitra.com | Charles & Ray Eames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부부
그 의자를 본 순간,
이렇게 생각했대요.
“이건 유럽에도 있어야겠다.”
빌리 펠바움은 이 의자에 단순한 기능 이상이
담겨 있다고 느꼈어요.
앉는 방식, 등받이의 곡선, 좌판의 재질.
모두가 일상의 경험을 바꾸는 구조였던 겁니다.
당시 유럽에는 이런 의자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기능성과 디자인,
인간 중심의 구조가
모두 결합된 이 제품은
혁신 그 자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유럽 생산 계약을 따냅니다.
이후 임스부부와 긴밀하게 협업하며,
비트라는 평범한 제조업체에서
디자인을 수입하고 해석하는 방향성을 가진
브랜드로서 시작하게 됩니다.
임스 체어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디자인이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고,
Source | vitra.com
비트라는 그 상징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 브랜드가 되었죠.
2
하지만 비트라는 단순히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비트라는 점점 더 자신만의 감각과
구조를 갖추기 시작해요.
가구를 팔기 전에,
항상 가구가 쓰일 공간 전체를
세팅해서 보여줬죠.
의자 하나만 놓지 않고,
조명, 벽, 바닥, 그림까지 전부 연출하죠.
심지어 함께 놓일 책까지도요.
Source | youtube.com/@vitra
그래서 비트라의 쇼룸에 가보면
언제나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장면처럼 구성되어 있어요.
그 이유는 명확해요.
사람이 실제로 그 물건을 어떻게 쓰는지,
그 안에서 어떤 공기를 느끼는지를
함께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이 방식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디자인을 체험하는 구조였고,
지금까지도 비트라의 핵심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3
그렇게 브랜드가 성장하던 중,
1981년에 모든 것을 바꿔버린 큰 화재가 발생해요.
공장이 거의 모두 타버렸죠.
Source | vitra.com
이 위기는 곧 선택의 순간이 되었어요.
다시 지어야 했는데,
이 회사는 그걸 완전히 다르게 풀어요.
단순히 공장을 다시 짓는 대신,
아예 건축부터 브랜드 철학을
담아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창업주 빌리 펠바움의 아들,
롤프 펠바움(당시 비트라 CEO)이
이끈 이 프로젝트는
세계적 건축가들과의 협업으로
비트라의 철학과 컨셉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죠.
‘건물부터 다시 디자인하자.’
그리고 그 안에 담을 생각도, 바꿔보자.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헤르조그와 드 뫼롱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에게 의뢰하여,
공장이 아니라 캠퍼스를 만들어요.
Source | vitra.com | Vitra campus map
가구 회사가 건축가들을 불러,
생산 공간을 디자인하게 만든
이 사례는 당시에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죠.
그만큼 비트라의 선택은
지금도 쉽게 생각하기 힘든
발상의 전환이었어요.
이로써 비트라는
가구를 생산하는 공간을 넘어서,
브랜드의 철학을 담은 공간을
만들게됩니다.
그냥 유명한 건축가들이
멋진 건물을 지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나씩 살펴보면,
이 공간은 단순한 조형이 아니에요.
전시, 실험, 교육, 생산, 판매.
건물마다 역할이 나뉘어 있고,
전체적으로는 비트라라는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게 짜여 있어요.
예를 들어,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단순히 자사 제품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디자인이라는 문화 자체를
탐구하는 공간이에요.
Source | vitra.com | vitra design museum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또 다른 건물인 샤우데포(Schaudepot)는
의자와 가구가 수백 개 전시된
창고형 뮤지엄이자,
자료보관소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죠.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실제로 찾아와
자료를 열람하고 공부를 해요.
Source | dezeen.com | vitra schaudepot 비트라 샤우데포
Source | vitra.com | vitra schaudepot 비트라 샤우데포
비트라는 캠퍼스라는 공간 구조 안에
브랜드의 모든 사고방식을 담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들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비트라는 건축가에게 단순한 시공이 아닌,
철학적 제안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하 하디드의 ‘소방서’ 건물은
비정형 곡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시도 자체가
‘기존 기능 건축의 한계를 깨자’는
철학의 반영이었죠.
Source | vitra.com | vitra fire station 비트라 소방서 (현재는 소방서의 기능을 하지는 않아요)
즉, 이 캠퍼스는 가구를 생산하는
‘공장지대’가 아니라,
디자인을 실험하고 전시하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디자인을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작은 도시로 설계된거예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비트라의 오래된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디자인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 고민이 브랜드의 구조가 된 거죠.
4
비트라는 디자이너를
일반적인 ‘고용’의 개념으로 함께 하지 않아요.
‘이 사람이 정말 비트라와 맞는 사람인가’를
천천히, 오래 관찰해요
그리고나서야 첫 협업을 결정하죠.
자기 철학이 있는 디자이너,
그리고 제품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있는
디자이너만 고르는 거죠.
이렇게 선정된 디자이너들은
제품에 자기 이름을 붙입니다.
안토니오 치테리오, 재스퍼 모리슨…
비트라와 함께한 디자이너들은
모두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사람들이죠.
그리고 이런 디자이너들은
단순히 ‘가구’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공간과 삶 전체를 구조적으로 바라봅니다.
Source | youtube.com/@vitra
그게 비트라가 만든 방식이에요.
“제품을 의뢰하는 게 아니라, 철학을 공유한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들은
하나의 오브제라기보단
사람의 생활 방식에
영향을 주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그래서 비트라는 제품을 만들 때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말해요.
“이건 10년 뒤에도 잘 쓰일 수 있을까?”
그래서 재료를 바꾸고,
부품을 교체할 수 있게 만들고,
수명 전체를 설계에 포함시켜요.
예를 들어,
부품을 쉽게 교체할 수 있게
만든다든지,
스크래치에 강한 고밀도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든지,
알루미늄처럼 재활용이 쉬운 소재를
선택하는 방식이죠.
실제로,
30년 넘게 쓰고 있는 비트라 의자는
지금도 고객 서비스 대상이에요.
‘고쳐 쓰는 가구’
그게 이 브랜드가 말하는 지속 가능성이에요.
5
이 브랜드는
오래 쓸 수 있는 가구를 만들어요.
그 가구는 공간에
진한 감각을 남기죠.
형태만 예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뭘 하고 싶은지까지
상상되게 만들어요.
그래서 비트라는
단순히 가구를 배치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그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를
함께 상상합니다.
Source | youtube.com/@vitra
공간은 건축이 큰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의자 하나가 바꾸는 공기에서
시작되기도 해요.
6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비트라는 제품만 파는 브랜드는 아니에요.
디자인 뮤지엄을 만들고,
디자이너 전시를 열고,
교육, 리서치,
워크숍까지 지원하죠.
이 브랜드는 디자인이라는 문화를
직접 만들고, 유지하고,
실험하고 있어요.
단순한 가구 브랜드를 넘어,
디자인 문화의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가구가 아니라 ‘그 안의 공기’를
기억하게 돼요.
비트라는 그걸 만들어낸 브랜드입니다.
이 브랜드가 남긴 건
잘 만든 가구나 멋진 건물만이 아닌거죠.
비트라는 우리에게
‘디자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 감각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줬어요.
가구가 아니라,
경험을 보여주는 방식.
판매가 아니라,
공유로 이어지는 구조.
빠름보다는 깊음,
유행보다는 지속성.
그런 기준을 계속 보여준 거죠.
이 브랜드는 제품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그걸 어떻게 보여줄지,
어떤 공간에 놓일지,
누가 만들고 누구와 공유할지까지
Source | youtube.com/@vitra
전부 연결된
디자인의 구조를 만들었죠.
그 구조가
비트라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고,
지금은 그게 문화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비트라였습니다.
비트라의 이야기는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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